2009년 12월 23일 수요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Fear Eats The Soul)

 

 

 

1974년 뉴저먼시네마의 기수인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Rainer Werner Fassbinder)의 대표작으로서 그가 각본을 쓰고 감독하였으며, 미술도 담당하였다. 브리기테 미라(Brigitte Mira)와 엘 헤디 벤 살렘(El Hedi ben Salem)이 주연하였다. 35㎜ 컬러로 제작되었으며, 상영 시간은 93분이다.

엠미(브리기테 미라)는 자식들을 모두 결혼시키고 청소부 일을 하면서 외롭게 혼자 사는 60세의 미망인이다. 어느 날 그녀는 술집에 들렀다가 알리(엘 헤디 벤 살렘)를 만난다. 아랍계 청년 알리 역시 "독일인은 주인이고, 아랍인은 개"라는 차별 속에 외롭게 살아가는 소외 계층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외로움을 채워 줄 수 있는 존재임을 예감하면서 나이와 인종의 벽을 넘어 가까워진다.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르지만 직장 사람들은 엠미를 따돌리고, 알리 역시 노골적인 적대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주위의 싸늘한 시선은 두 사람이 잠시 밀월여행을 다녀오자 정반대로 달라져 친절하게 대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각자의 실리를 위한 것이며, 인간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엠미의 자식들은 아이를 돌볼 사람이 필요하자 어머니에게 접근하고, 상점 주인은 물건이 잘 안 팔리는 이유 등으로 자기 잇속을 차리기 위해서 돌변한 것이다.

불행이 행복으로 바뀐 듯한 순간에 정작 엠미와 알리의 관계에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주위 사람들에 동화된 엠미는 자신도 모르게 알리를 열등한 인간으로 대하고, 알리는 자신이 결코 이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구경거리 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옛 애인에게로 떠난다. 엠미는 알리를 찾아 화해하지만 알리는 이미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잘 나타나는 불치병에 걸렸고, 엠미가 쓸쓸하게 병석을 지키는 모습을 비추면서 끝맺는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뜻의 원제목 'Angst Essen Seele Auf'는 알리가 자기 나라 속담을 서툰 독일어로 번역하여 불안해 하는 엠미를 위로한 말인데, 독일 어법에 맞지 않는 말로서 'Angst isst Seele auf '가 정확한 표현이다. 의도적으로 틀린 표현을 제목으로 사용한 것은 외국인들이 독일어의 동사 변화를 정확하게 구사하기 어렵듯이 독일의 법칙에 따라 살 수 없다는 은유로 해석된다.

파스빈더는 독일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더글러스 서크의 멜로드라마 기법에 브레히트의 소외효과를 접목하여 사회비판적 멜로드라마의 전형을 제시하였다. 뉴저먼시네마가 영화사적으로 하나의 사조로 자리잡은 데에는 이 영화가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줄거리와 카메라, 편집, 조명 등은 1950년대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의 틀을 차용하고 있지만, 파스빈더의 대부분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독일 사회에 잔재한 파시즘을 공격하고,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장밋빛 전망 뒤에 숨은 위선적인 모습과 소외된 계층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인물들을 극단으로 몰고가는 상황 전개, 멜로드라마의 감상주의에만 빠지지 않기 위하여 군데군데 느닷없는 침묵의 순간을 장치하여 긴장감을 자아내는 연출 기법,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색상의 대비, 의도적으로 좁고 답답한 화면을 연출하여 억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구도 등 15일 만에 완성한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치열한 시대 정신과 완벽에 가까운 영화 형식을 보여 준다.

알리 역을 맡은 근육질의 엘 헤디 벤 살렘은 파스빈더의 동성애 파트너였다고 하며, 파스빈더는 엠미의 사위 역으로 출연하였다. 1974년 칸영화제에서 비평가상을 받았으며, 국내에서는 1977년 11월에야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설명이 굉장히 꼼꼼하게 잘되어 있네요

브레히트의 소외 효과란 간단히 말하면 관객이 내러티브에 수동적으로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기법입니다

낯설게 하기로도 불려지는 소외효과를 그의 연극에서 사용하게 된 배경은 당시 독일의 시대 상황에 있습니다

독일의 나치 정권이 독일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었다는 건 유명한 역사적 사실이죠

브레히트는 무비판적으로 선동되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독일 대중들에게 비판적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그의 비판의식이 소외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한마디로 관객들의 무조건적인 몰입을 경계하고 관객들에게 비판적 태도와 사고를 요구하며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죠

파스빈더의 영화를 보고나면 늘 파스빈더를, 그의 삶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 어느것도 긍정할 수 없었던,  그래서 미칠만큼 외로운 삶이지 않았을까

실재 파스빈더는 다작에 대한 강박증에 시달렸고 술과 약물에 찌들어 지냈으며 그의 동성애 애인들이 자살하는 등 그의 주변에는 이런저런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배우들에게도 폭군처럼 난폭하고 포악하게 굴었다고 하죠

이 자기 파괴적이고 시니컬했으며 사랑을 갈망했던 독일 게이 감독은 저에게 모성본능을 자아냅니다

파스빈더는 예민하고 난폭하지만 사실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연약한 동물을, 상처받은 짐승을 떠올리게 합니다

 

떠나려는 알리를 바라보던 에미의 불안스런 눈동자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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